🏁 Editor’s Note
이번 호를 발행하며 자꾸 같은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무언가의 '앞면'을 보고 손이 먼저 나가는 순간들이었습니다.
크록스의 '물에 강한 신발'이라는 인상은 정작 신발을 가장 빨리 망치는 습관을 만들었고, 음료에 붙은 숫자 '0'은 1조 원 시장을 열었지만 소주와 아이스크림 앞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읽혔습니다. 마트에서는 싱싱한 꼭지와 흠집이 단맛을 보장한다는 오래된 속설이, 정작 중요한 줄무늬와 당도를 가렸습니다. 좌우로 찌그러진 햄버거 가게 앞엔 사람들이 줄을 섰지만, 한 달 뒤 손에 남는 건 결국 한 입 베어 문 버거의 맛입니다.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앞면의 인상은 빠르게 설계할 수 있지만, 그 값을 치르는 건 언제나 뒷면이라는 것. 라벨 뒷면의 성분표, 껍질 안쪽의 과육, 매장이 아니라 접시 위의 맛. 부산과 울산의 낡은 창고가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멋진 외관이 아니라, 그 안에 7년·20년을 조용히 쌓아온 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
가끔은 앞면을 지나쳐, 10초만 더 뒷면을 들여다보는 것. 이번 호 엔엑스매거진이 그 안목을 조금이나마 날카롭게 만들어드리길 바랍니다.
- TOP STORY : 물에 강한 신발이 한 철 만에 망가지는 이유 — 크록스 세척의 진실
- NX PICK : 1조 원짜리 '0' — 제로 음료, 그 숫자를 믿어도 될까
- LIFE : 2만 7천 원짜리 수박, 실패하지 않는 법 — 비싼 여름 과일 고르기
- PLAY : 녹슨 창고가 무대가 되다 — 전국 폐산업시설 문화공간 6선
- INSIGHT : 매장을 통째로 찌그러뜨린 버거 체인 — 광고는 어떻게 '경험'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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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강한 신발이 한 철 만에 망가지는 이유 — 크록스 세척의 진실]
여름, 신발장에서 크록스를 꺼냅니다. 인솔은 거뭇하게 변색됐고, 어쩐지 발이 꽉 낍니다. 분명 물에 강한 신발이라 대충 헹궈 신었을 뿐인데, 한 시즌 만에 색도 모양도 달라져 있습니다.
원인은 소재에 있습니다. 크록스의 크로슬라이트(Croslite™)는 고무도 플라스틱도 아닌 특허 레진으로, 가볍고 푹신한 대신 열·화학 성분·자외선에 예민합니다. '물 닿아도 되는 신발'이라는 안도감이, 사실은 신발을 가장 빨리 망치는 습관이었던 셈입니다. 크록스 공식 가이드가 금지하는 건 크게 세 가지입니다.
- 세탁기와 건조기 : 드럼 회전과 열이 소재를 변형시킵니다. 멀쩡해 보여도 미세 변형은 이미 시작된 뒤입니다.
- 뜨거운 물과 표백제 : 수축과 누런 변색의 직접적인 원인. 찬물 또는 미지근한 물에 중성세제만 써야 합니다.
- 직사광선 건조 : 색 바램과 변형을 부릅니다. 화이트·파스텔 컬러는 특히 누렇게 뜹니다.
거꾸로 말하면, 미지근한 물과 낡은 칫솔 하나로 5분이면 끝나는 일입니다. 다만 인솔에 한번 깊이 스며든 검은 변색은 아무리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세척은 때를 쌓지 않는 것 — 결국 신발의 수명을 가르는 건 세제가 아니라 습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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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원짜리 '0' — 제로 음료, 그 숫자를 믿어도 될까]
편의점 냉장고에 음료 코너의 절반이 검은 라벨과 굵은 '0'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제로 콜라, 제로 사이다, 제로 소주, 냉동고엔 제로 아이스크림까지. 국내 제로 음료 시장은 5년 만에 1,630억 원에서 1조 2,780억 원으로 7.8배 커졌습니다. 그런데 그 '0'을, 우리는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요.
- 제로 탄산음료 : 라벨값을 하는 유일한 우등생입니다. 일반 음료보다 열량은 98%, 당류는 99% 낮습니다. 다만 100ml당 4kcal 미만이면 '0'으로 표기할 수 있어, 500ml 한 병에 최대 19.9kcal가 조용히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 제로 슈거 소주 : 가장 큰 착시입니다. 소주 칼로리는 대부분 알코올에서 나오기 때문에, 360ml 기준 일반 소주보다 고작 10kcal 낮을 뿐입니다. '제로'는 건강이 아니라, 건강을 신경 쓰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단어에 가깝습니다.
- 제로 아이스크림 : 당은 뺐지만 지방은 남습니다. 일부 초코바는 열량과 포화지방이 일반 제품과 비슷한 수준이고, 당알코올 탓에 여러 개 먹으면 배탈이 날 수도 있습니다. 앞면의 '0'보다 뒷면 성분표가 정직합니다.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제로'는 건강을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죄책감 없이 즐겨도 된다는 허락에 가깝다는 것. 그리고 그 허락에는 라벨 뒷면을 10초 더 들여다보는 조건이 붙습니다. 여름에 땀 흘린 뒤 든 제로 콜라는, 빠져나간 전해질까지 돌려주지는 않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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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7천 원짜리 수박, 실패하지 않는 법 — 비싼 여름 과일 고르기]
마트 청과 코너 앞에서 멈칫하는 계절입니다. 상품 수박 한 통 가격이 2만 7천 원대로 평년보다 27% 올랐고, 참외도 열 개에 2만 원을 넘겼습니다. 값이 오를수록 '실패의 비용'도 커집니다. 큰맘 먹고 산 수박 속이 허옇다면 아쉬움은 지갑을 한참 넘어서죠. 같은 값으로 더 달고 덜 후회하는 기준 여섯 가지를 골랐습니다.
- 수박 : '꼭지가 싱싱해야 좋다'는 속설은 근거가 없습니다(꼭지 유무로 당도 차이 없음). 검은 줄무늬가 선명하고, 가볍게 두드렸을 때 맑게 울리며, 같은 크기면 묵직한 쪽을 고르세요.
- 복숭아 : 색·향·무게·촉감 네 가지면 충분합니다. 붉은 기운이 고르고 향이 또렷하며, 살짝 눌렀을 때 탄력이 느껴지면 바로 먹기 좋은 때입니다.
- 포도 : 알 크기보다 색과 탄력입니다. 표면의 하얀 가루(과분)는 오래된 게 아니라 신선하다는 신호. 이제는 품종 이름값보다 실제 당도를 봐야 합니다.
- '브릭스' 당도 선별 매대 : 자르지 않고 속 당도를 재는 비파괴 선별이 확대되는 중입니다. 잘 익은 수박은 11~12브릭스. '당도 선별' 표시 상품을 우선 고르면 실패 확률이 크게 줄어듭니다.
- 조각·소분 구매 : 1인 가구엔 통과일보다 조각 과일이 오히려 알뜰합니다. '얼마에 샀나'가 아니라 '버리지 않고 다 먹었나'가 기준입니다.
- 자른 수박 보관 : 랩으로 싸 두면 세균이 최대 3,000배까지 늘 수 있습니다. 큼직하게 썰어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하세요.
과일값은 우리 의지로 끌어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더 잘 익은 것을 골라내는 안목만큼은, 가격표 바깥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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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창고가 무대가 되다 — 전국 폐산업시설 문화공간 6선]
녹슨 철문과 높은 천장, 한때 기계 소음으로 가득했을 거대한 공간. 가동을 멈춘 공장과 창고가 전시장과 공연장으로 다시 숨 쉬고 있습니다. 역사를 지우는 대신, 시멘트 균열도 철골도 그대로 둔 채 그 위에 새 이야기를 덧씌운 곳들이죠.
지금 바로 가볼 수 있는 전국의 창고 여섯 곳을 골랐습니다.
- F1963 (부산) : 세계적 와이어로프를 뽑던 고려제강 공장(1963)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노출 콘크리트·철골 위에 얹힌 전시가 특유의 긴장감을 만듭니다.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 ~6/14.
- 대구예술발전소 & 수창청춘맨숀 (대구) : 옛 연초제조창과 직원 사택 아파트가 나란히 예술의 옷을. 만들어지는 예술과 보여지는 예술이 한 지붕 아래 공존합니다. SAC ON SCREEN 격주 토요일 14:00 무료 상영.
- 팔복예술공장 (전주) : 카세트테이프 공장(1979~2008)이 예술 플랫폼으로. 진짜 매력은 건물 밖 폐철길 — 봄엔 이팝나무, 가을엔 미래문화축제. 20주년 특별전 ~6/21.
- 동부창고 (청주) : 1946년부터 연초제조창 물자 창고였던 붉은 벽돌 건물. 도심 한가운데 야외 같은 실내, 서늘한 공기가 그대로입니다. 생활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상시 접수.
- 장생포문화창고 (울산) : 쇠락한 고래잡이 항구의 산업시설이 6층 복합문화시설로. 밤이면 저유탱크가 미디어파사드 스크린이 됩니다. 제5회 수국 페스티벌 6/19~28(무료).
- 상상플랫폼 (인천) : 아시아 최대 곡물창고가 원도심 문화 앵커로. 부두와 바다를 곁에 둔 대형 전시 공간. 6월 레드불 댄스(6/13)·전국차인큰잔치(6/27) 등 행사 연속.
전시의 긴장감을 원한다면 부산·인천, 도심 속 야외 같은 실내를 원한다면 청주, 여름밤의 빛과 꽃을 원한다면 울산. 낡은 창고 앞에서 잠시 멈춰 시간의 무게를 상상하는 것, 그게 창고 여행의 진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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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을 통째로 찌그러뜨린 버거 체인 — 광고는 어떻게 '경험'이 되는가]
2026년 5월 22일, 토론토 한 거리의 A&W 매장이 통째로 좌우로 짓눌려 있었습니다. 간판도, 트레이도, 입구의 곰 마스코트도 전부 납작하게. 신메뉴 '스매시 버거(으깨 굽는 버거)' 하나를 알리기 위해, 매장을 진짜로 '으깬' 것입니다. 스매시 버거 트렌드에 한발 늦은 후발주자가 트렌드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었죠. 이 캠페인이 영리했던 지점은 셋입니다.
- 일치 : '으깬다'는 메뉴 콘셉트를 매장 형태에 그대로 적용해, 두 번 쳐다보게 만든다
- 반전 : 완성된 뷰티 샷 대신, 먹다 남긴 잔해를 광고의 주인공으로 세운다
- 희소 : 단 다섯 시간·단 한 곳 무료 팝업으로 '여기 아니면 못 본다'를 만든다
찌그러진 매장은 추가 광고비 없이 사진과 영상을 부르는 장치였고, 옥외·소셜·TV를 아우르는 전국 캠페인의 중심축이 됐습니다. 다만 이 버거는 6월 말까지의 기간 한정 메뉴 — 화제의 수명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잘 만든 캠페인은 결국 잘 만든 제품 위에서만 빛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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